출처 : 대한탁구협회
우리나라에 탁구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도입이 된 것인지 문헌상 분명하게 기록된 것은 없다. 다만 국제탁구연맹 편람에는 탁구가 1899년 영국에서 일본으로 보급되었고 1900년대 초 한국/중국/홍콩 등지로 전파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에 따라 탁구 계에서는 도입경로를 두 가지도 추정하고 있다. 하나는 인접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문물의 교류와 인적왕래가 잦았던 일본어서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도입되었다는 설이며 또 하나의다른 경로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교사들이 종교전파의 수단으로 탁구를 이용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분명치는 않다.
대한탁구협회에서는 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에서 주최했던 “핑퐁경기대회”를 한국탁구의 효시로 보고 있다. 이 시점을 계기로 탁구는 소수계층의 유희에서 대중적인 스포츠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의 제2회 대회에는 3백 여명의 남녀선수가 참가.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한국의 이용렴 선수가 여자부에서 패권을 차지했다.
출처: The Ping Pong
또 1927년에는 조선신궁경기대회에 핑퐁이 경기중목으로 채택되어 권상순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우리 손으로 열린 첫 대회는 YMCA체육관에서 개최한 제1회 조선탁구대회이다. 한국체육사상 특기할 이 신규행사에서는 장경복 선수가 우승 했고, 경성제국대학이 주최 한 조선학생탁구대회에서는 방인영 선수가 패권을 자치했다.
출처: The Ping Pong
그동안 일본식 연식공을 사용해 왔던 한국탁구는 1936년부터 구미에서 사용하던 경식볼로 전환, 기술개선에 진일보하는 전기를 맞게 된다. 이제 5월 제1의 전조선 경식탁구대회가 개최되어 최근항 선수가 신예로 등장,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최근항 선수는 1940년 6월 동경에서 열린 범태평양 탁구선수권대회와 이듬해 전 일본 선발탁구대회 그리고 제5회 전 일본 탁구선수권대회를 석권하는 등 발군의 기량으로 한국탁구가 국제무대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우리나라 탁구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같이 해방전의 한국탁구는 여명기의 일천한 연륜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뛰어난 자질로 눈부신 활약상을 보임으로써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에 민족의 울분을 탁구를 통해 달래 주었다고 하겠다. 1945년 해방을 맞은 그 해 9월 조선탁구협회가 발족, 당시 동덕여고 설립자였던 조동식씨가 초대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어 1947년에는 대한탁구협회로 개칭하고 첫 사업으로 제1회 전국종합탁구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또 1950년에는 국제탁구연맹에 가입했고 같은 해 현 아시아탁구연합(ATTU)의 전신인 아시아탁구연맹(ATTF)의 회원국으로 가맹했다.
출처 : 대한탁구협회
우리나라 탁구가 국제대회에 처음 출전한 것은 1952년 11월 싱가폴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였고, 1954년 역시 싱가폴에서 개최된 제4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경호, 위쌍숙 선수가 혼합복식 종목을 석권, 평화배를 차지한 것이 국제대회에서의 첫 우승이다. 세계무대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56년 동경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이하 세계대회)로서 여자단체 5위, 남자단체 14위의 전적을 거두는데 그쳤다.
한국탁구가 탁구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1959년 도르트문트에서의 제 25회 세계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준우승의 전과들 올리면서부터 이다. 이후부터 정상정복의 가능성을 보여 왔던 한국탁구는 13년 후 마침내 그 숙원을 실현했다. 1973년 4월 59개국이 출전한 제 32회 세계대회에서 여자단체전을 제패하는 일대 개가를 올린 것이다. 우리나라 구가중목 사상 전인미답의 첫 쾌거를 거둬 한국탁구에 화려한 개화의 시대를 열었던 사라예보의 주역은 이에리사, 정현수, 박미라 트리오였다.
출처 : 대한탁구협회
이들이 은퇴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한동안 스타부재의 공백기를 맞았던 한국탁구는 환상의 콤비 양영자, 인정화의 등장과 유남규의 출현으로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에서 세계최강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 여러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 한국탁구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991년은 우리나라 스포츠사상 처음으로 탁구종목이 남북 단일팀을 구성,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대회에 출전하여 여자단체에서 막강한 중국을 격파하고 우승함으로써 한국탁구가 국위선양의 선두 주자로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해였다.
90년대 후반부터 스타들의 전력도 쇠퇴하고 이들을 이을 유망주도 없어 한국탁구는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언제나 봄이 오듯, 2023년 더반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메달 3개를 획득하며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2024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하며, 대한민국 탁구도입 100년 만에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첫 개최라는 기념비적인 순간을 맞이한다.